뉴욕의 택시 운전사에서 현대음악의 거장이 되기까지,필립 글래스가 이야기하는 그의 삶과 음악
필립 글래스의 음악이 여러 원천과 닿아 있다는 사실은 이미 일찍부터 예견된 것인지도 모른다. 1937년, 볼티모어의 한 넉넉지 못한 유대인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여덟 살 때부터 플루트를 배운 한편으로 열한 살 때부터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레코드 가게 일을 거들며 당시 유행하던 대중음악을 폭넓게 들었다. 또한 바르톡, 쇼스타코비치, 스트라빈스키 같은 현대음악 작곡가들의 곡을 접한 것도 그때였다. 당시 이 음악가들의 레코드판은 잘 나가지 않았고, 아버지는 그 이유를 알기 위해 파고들다가 결국 현대음악의 전도사가 되기에 이르렀다. 그 덕분에 어린 글래스도 고전음악뿐만 아니라 상당한 양의 현대음악을 귀동냥할 수 있었는데, 특히 ‘아버지 몰래 아버지와 함께’ 음악을 나눈 밤을 이야기하는 대목은 퍽 아름답게 다가온다.“아버지가 틀어 놓은 음악을 몰래 들으면서 내 귀도 좀 트였다. 우리 집은 볼티모어 다운타운 주택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연립주택이었고, 형과 나의 침실은 거실 바로 위에 있었다. 음악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나는 몰래 침대에서 빠져나와 계단 중간쯤에 걸터앉아 한참을 귀 기울였다. 아버지가 고개만 돌리면 들킬 위치였지만 한 번도 걸린 적은 없었다. 어쩌면 내가 거기 있는 것을 알고도 내버려 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식으로 아주 어릴 적부터 아버지와 ‘함께’ 음악을 나눈 밤을 헤아릴 수 없었다.”(60쪽)이어 열다섯에 시카고 대학 조기 입학 대상자로 선정되어 고향을 떠나게 된 필립 글래스는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이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지적, 문화적 체험을 한다. 문학, 철학, 역사, 과학, 수학, 사회과학 등을 두루 파고드는가 하면, 시카고라는 도시가 제공하는 수준 높은 문화를 닥치는 대로 스폰지처럼 빨아들이는데, 이는 훗날 그의 음악 세계로도 면면이 흘러 들어가게 된다.시카고 시절에서 특히 인상 깊은 대목은 그의 재즈 편력기다. 버드 파월, 찰리 파커, 존 콜트레인, 델로니어스 몽크, 레드 갈란드, 스탠 게츠, 쳇 베이커, 마일스 데이비스, 오넷 콜맨 등 1950∼1960년대를 대표하는 기라성 같은 재즈의 거인들이 모두 거기에 있었고, 그 한가운데에서 필립 글래스는 현대 재즈의 진수를 흠뻑 빨아들였다. 시종 차분한 어조로 삶을 돌아보는 그이지만, 이 대목에서만큼은 그도 그 시절의 청년으로 돌아간 것마냥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그는 어릴 적 아버지의 가게에서 귀동냥으로 들었던 고전적 실내악과 더불어 시카고 시절에 심취한 재즈가 이후 그의 음악을 이루는 두 개의 중요한 원천이 되었다고 고백한다.필립 글래스의 음악 인생은 대학 졸업 후 줄리아드 음악원에 들어가면서 마침내 첫 닻을 올린다. 음악으로 오롯이 채워진 ‘진짜 인생’을 살고 싶어 부모님의 낭패감과 염려마저 뒤로 하고 뉴욕으로 간 그는, 윌리엄 버그스마와 빈센트 퍼시케티를 사사하는 가운데 작곡 수업과 훈련을 부지런히 밟아 나간다. 줄리아드의 필수 과정인 합창단 활동 역시 작법에 필요한 기초를 두루 다지는 데 알찬 밑거름이 되었다. 무엇보다 이 시절에 몸에 들인 습관, 즉 오전 열 시부터 오후 한 시까지는 무조건 피아노 앞에 앉아 공부하고 그 외의 시간에는 뮤즈의 활동을 엄격히 금하도록 한 것은 그의 평생을 지배하는데, 놀라울 정도의 방대한 생산성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음악뿐만 아니라 주변 예술에 대한 관심도 깊었던 그는, 실험적이고 역동적인 에너지로 가득한 뉴욕 다운타운 미술계(특히 추상표현주의)와 공연계, 그리고 기성 사회에 대한 비판과 존재의 초월을 추구하는 비트 문학 등으로부터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와 동시대를 살며 현대 예술의 지형을 바꾸는 데 심대한 영향을 끼쳤지만 에이즈라는 재앙 앞에 우수수 떨어져 나간 수많은 예술인들에게 바치는 애도는 가만히 가슴을 적신다.이 책의 1부는 파리 시절에서 클라이맥스에 이른다. 줄리아드를 졸업하고 파리로 건너간 필립 글래스는 걸출한 두 스승을 만나면서 비로소 든든한 음악적 받침목을 획득한다. 음악가들의 스승으로 유명한 나디아 불랑제와, 시타르 명인으로서 인도 고전음악을 서구에 알리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 라비 샹카르가 바로 그들이다. 불랑제 선생은 무엇보다도 음악가가 갖추어야 할 확실한 연장통을, 라비 샹카르는 비서구 음악에 눈뜨게 하는 한편으로 ‘음악은 어디에서 오는가’에 대한 깊은 통찰을 선사했다.한편 파리 시절은 필립 글래스에게 유럽 현대 예술의 최전선을 경험하게 한 장이기도 했다. 고다르와 트뤼포가 주도하는 누벨바그 영화며, 현대음악의 또 다른 거장인 피에르 불레즈와 슈톡하우젠의 음악, 그리고 피터 브룩과 그로토프스키로 대변되는 실험적 연극 등이 신선한 문화적 충격을 안겨 주었다. 유럽의 전위적 예술을 깊이 빨아들이는 가운데 필립 글래스는 리 브루어 등과 함께 대안적 실험 극단을 태동시키기도 했으니, 바로 훗날 ‘마부 마인스’라고 명명될 극단이다.필립 글래스가 연극계와 깊은 인연을 맺게 된 데는 그의 첫 번째 아내인 조앤 아칼라이티스의 영향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필립 글래스는 지금까지 네 번 결혼하여 슬하에 네 아이를 두었다. 이 책에서 그는 첫 번째 아내인 조앤과 사별한 아내인 캔디 저니건에 대해서만 언급한다.) 마부 마인스 창단의 주역이기도 한 조앤은 연극감독이자 대본 작가로서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뉴욕의 실험적 연극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두 사람은 파리 시절에 결혼하여 슬하에 두 명의 자식을 두었으며, 헤어진 뒤에도 예술적 동지로서의 인연을 끈끈히 이어 오고 있다.
STROL
배송
상품 배송은 주문/결제 완료일로부터 3~7일가량 소요됩니다(주말 및 공휴일 제외). 단, 입고 지연 및 품절로 인해 배송이 지연되는 경우에는 개별 연락을 드립니다.
교환 및 반품 규정
1. 신청 방법 : 상품을 수령하신 날로부터 3일 이내로 스트롤(02-3210-9704)이나 이메일 (info@strol.kr)로 접수해 주세요.
2. 배송 비용 : 단순 변심은 왕복 배송비가 차감된 금액이 환불됩니다.
3. 반품 주소 :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로 122길 35, 프레인빌라 1층
4. 이메일 문의 시 성함과 연락처, 문의 및 불편 사항 및 사진 등을 첨부하여 이메일 발송해 주시기 바랍니다.
교환 및 반품 불가 사유
1. 반품/교환 가능 기간이 경과된 경우
2. 고객 주문 확인 후 상품 제작에 들어가는 경우(주문 후 15일 이내에는 취소 가능)
3. 시간의 경과에 의하여 재판매가 곤란할 정도로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4. 포장을 개봉하였거나 포장이 훼손되어 상품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5. 소비자 책임의 사유로 상품 등이 멸실 또는 훼손된 경우
[ FRANZ ] 음악 없는 말